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를 하고 얼마 후, 울 신랑 방에서 나를 급하게 부르길래 가 봤더니, 방 창문으로 내려다 본 뒷뜰에 사슴 가족이 있다. 오오오오옷.... 사슴이다 사슴. 급하게 방안에서 사진부터 찍고, 나가 봤더니 이미 다들 사라지고 없다.
그 후로도 아주 가끔 초봄이나 겨울에 먹이를 찾아 나오는 사슴들을 볼 수 있다.

토끼는 이사 첫날 저녁 부렵 부터 거의 매일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난 후, 토끼들이 나와서 저녁끼니로 여기 저기 풀을 뜯어 먹고, 뛰어 다니기도 하느걸 보면서 이름도 붙여 주고 귀여워라 했었다. 어느날 우리가 채소를 키우기 시작하고, 그 식물들이 채 꽃도 피우기 전에 사라지기 전 까지는.
이렇게 토끼며 사슴이며 이야기를 하면 내가 마치 어느 시골 한 구석에 사는것 같은데, 실은 그렇지는 않다.
내가 사는 곳은 큰 대도시는 아니지만, 미국에서는 그래도 중소 도시쯤에 속하고, 우리가 사는 집은 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이웃들이 바로 옆에 붙어 사는 평범한 주거지이다.
이 근처 동네 집들은 어린아이가 있거나, 동물을 키우는 집들이 아니면 대개 담이 없이 지낸다. 일단은, 담을 쌓는게 비싸기도 하거니와, 담이 없어도 안전하고, 미관상으로도 막히면 답답하고, 기타 등등. 우리도 그닥 필요성을 못느껴서 담이 없이 지낸다. 그러다 보니, 동네 풀어 놓은 고양이들도 가끔 들리고, 뒷 숲풀속의 동물들도 가끔 나오고 그런다.
요새 이 근처에 부쩍 사슴 피해가 많단다. 사슴들은 토끼보다 먹성이 더 좋고, 토끼 울타리는 무릎 높이면 되지만 사슴은 2미터는 되어야지, 왠만한 높이는 그냥 뛰어 넘는단다. 사슴이나 토끼들은 약한 동물들이기 때문에 굉장히 예민하다. 작은 기척에도 귀를 쫑긋 세우고 잽싸게 도망가거나, 도망갈 순간을 놓쳤다 싶으면 토끼들은 그자리에서 죽은 듯 가만히 있는다. 한번은 '아니, 겁도 없이 도망도 안가네' 하고 가까이 가 봤더니, 부들부들 떨고 있는 토끼가 너무 불쌍해서 그냥 모른척 다시 집 안으로 들어 온 적도 있다. 그 후로 일부러 발자국 소리를 크게 소리 내어 쫒기도 한다. 그런 약한, 자기네들 터가 아니면 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짐승들을 예전보다 쉽게 볼 수 있는 이유는, 이 근처 개발 붐 때문이다.
여기저기 공원을 만드네, 집을 짓네, 상가를 들이네 하면서 그냥 싹 밀어 버리기 때문인거다.
내가 예전에 살던 아파트 단지 바로 옆에도 어느날 숲덤불이던 지역을 싹 밀고 깔끔하게, 너무 깔끔해서 허전하다 싶은 정도인 공원을 만들어 버렸다. 그렇게 공원 조성 후 몇년간은 매년 그 이전에 그곳에 날아오던 철새들이 텅빈 들판이 되어 버린 공원 안에서 끼룩 끼룩 울기만 했다. 그냥 한눈에 봐도, 생소함에 어리둥절 해 하는게 보였다.
우리는 아직도 토끼들이랑 실랑이를 벌이고 있고, 남김 없이 먹어 치워버린 토끼들이 밉기도 하지만, 가끔 신랑이랑 둘이서 솔직하게 얘기 한다. 하기사, 원래는 쟤네들이 살던 곳에 우리가 들어와 사는건데..... 하고.
그래도..... 그래도 말이지, 우리 더불어 살자꾸나. 좀 남겨 가면서 먹어랏!
